
<제4기 초의 해안선>
구석기시대의 제주도는 독자적 역사 단위에서 별 의미가 없다.
그 시절 제주도는 섬이 아니었다. 한반도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까지 연결된 대륙의 일부였다. 제주도가 섬으로 분리된 건 겨우 1만 년 전, 신석기시대가 막 시작되려던 때의 일이다. 먹이를 찾아 옮겨 다니는 구석기인들의 하루 이동거리가 50km는 되었다고 하니, 제주도의 독자적 구석기 문화를 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하루는 제주도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은 일본 열도에서 사냥을 하며 또 며칠 후에는 한반도에서 열매를 따먹고, 또 한 달 뒤에는 황하 근처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게 당시의 상황이었다. 물론 그 시절엔 섬도, 반도도, 황하도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때문에 애국심에 들뜬 사람들의 구석기 연구 열기와는 달리 구석기 문화의 국적을 따지는 것은 사실 웃기는 일이다.(제주역사기행, 이영권)
구석기시대라 함은 인류가 출현하여 농경방식을 모르고 수렵채집에 의하여 식량을 구했던 시대이다. 일정한 곳에 정착하지 않았으며, 정주(定住) 가옥을 지을 줄 몰랐던 시대이다. 또한 흙을 빚어 토기도 제작할 줄 몰랐으며, 다만 석기를 떼내는 수법으로 제작하여 사용하였던 시대이다.
구석기시대는 크게 3시기로 나뉘는데 전기는 약 200만년∼10만년전으로 호모 하빌리스, 중기는 10∼5만년 전후로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sapiens neandethalensis), 그리고 끝으로 후기는 5만년∼1만년전으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의 각기 다른 화석인류가 살았다. 제주도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보고된 것은 북제주군 애월읍 어음리(於音里) 빌레못 동굴유적과 서귀포시 천지연 유적 두 군데로, 전자는 동굴입구 집자리, 후자는 바위그늘 집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