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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장군의 슬픈 전설을 안고 영실을 오르다

by 오르미 posted Sep 26, 2005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 진다는 추분. 이제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진정 가을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날 정도로 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제주섬에서 계절이 가장 먼저 바뀌는 한라산을 올라 가을의 행방을 찾아 보자. 1100도로의 구비구비 길을 돌아 영실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숲속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적송 숲이다. 언젠가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되었다는 내용이 새겨 진 비석을 지나 조금 가면 계곡의 하얀 물줄기가 등산객을 맞이한다. 한라산 어디를 가나 그 물결에 발을 적셔야 하는 조릿대의 바다를 헤치고 난 등산로를 따라 조금씩 병풍바위를 향해 발길을 옮긴다.


등산로에는 조릿대의 막강한 힘에도 굴하지 않고 수정난풀 가족이 서로를 의지하며 자리를 잡고 있다. 조심스럽게 조릿대를 헤치고 가족사진을 한 장 찍고는, 행여 그 모습을 들킬까 나뭇잎으로 덮고는 길을 재촉한다.
등산로에는 여기 저기 들꽃들이 피어 지친 등산객을 위로하고 있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앞 사람의 엉덩이만 보고 오르다가, 다시 앞사람의 머리만 보고 내려오는 것 같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주위의 풍경이나 들꽃에는 시선을 주지 않고 그저 오르는데만 매달리는 것 같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자연을 보호하여 후세에 물려주려면 우선 자연에 관심을 갖고 자연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산이나 오름을 단지 운동하기 위해 오른다면 진정 그 가치를 모를 것이고, 보호하고 보전하는데도 마음이 가지 않을 것이다.
길가에 수줍게 피어 있는 한라돌쩌귀의 그 앙증맞은 모습을 보며 투구와 닮은 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른다면 좀 더 자연과 가까워 질 것이다.


숲을 지나 능선을 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오는 것이 기암절벽이다. 비가 오면 폭포수가 흐르는 절벽에는 물줄기가 흘렀던 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기상변화가 많은 한라산 닯게 한줄기 구름이 오락가락 등산객과 숨박꼭질을 한다.


영실 등산로에는 큰 바위산 위에 이상야릇하게 생긴 기암괴석들이 솟아있다. 이것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진다.
어찌보면 장군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나한 같기도 해서, 사람들은 오백장군 혹은 오백나한(五百羅漢)이라고 부르는 기암괴석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옛날 설문대할망이 오백아들을 거느리고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그 아들들이 양식을 구하러 간 사이에 아들들에게 먹일 죽을 쑤다가 그만 큰 가마솥에 빠져 죽고 말았다.
오백명의 아들들이 돌아와 배가 고픈 김에 어머니가 빠져 죽은 줄도 모르고 그 죽을 맛있게 먹었다는데 499번째 아들까지 먹고 난 후 막내가 나머지 죽을 먹다가 앙상한 뼈가 나왔다.
그제서야 아들들은 자기들이 어머니를 끓인 죽을 먹었다는 자책감으로 막내는 서귀포 앞바다로 내려가서 슬피울다 돌로 변해 '외돌개'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형들은 그 자리에서 굳어져 영실기암이 되었다고 한다


오백장군 반대편으로 병풍바위라고 부르는 절벽위 능선을 따라 등산로가 있다. 병풍을 두른 듯한 바위가 절벽을 이루고 있는 그 능선에는 여러가지 들꽃들이 피어 나그네를 반긴다.
구름 이슬 머금은 한라부추 한 쌍이 바람에 떨고 있다.


능선을 오르다 지치면 잠시 쉬어 뒤를 돌아보라. 제주섬 서쪽의 오름들이 달려와 나의 품에 안긴다.
구름 가득한 하늘 아래 이스렁오름과 쳇망오름이 버티어 서 있고, 그 너머 올망졸망 오름들이 서로의 모습을 뽑낸다.
바위위에 잠시 걸터 앉아 흘러가는 구름과 그 아래에서 펼쳐지는 풍경을 보노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병풍바위 능선을 벗어나면 구상나무 숲이 있고, 그 숲을 벗어나면 선작지왓이 나타난다.
선작지왓은 봄 철쭉과 진달래 만발한 모습이 제격이지만, 이 계절 높은 하늘과 맑은 구름 아래 펼쳐지는 부악의 전경도 결코 모자라는 풍경은 아닐 것이다. 선작지왓에 접어 들어 볼썽사나운 나무데크 등산로를 따라 가다 보면 노루샘이 있다.
노루가 뛰어 노는 곳에 있어 노루샘이라고 했는지는 모르나 시원한 샘물에 목을 축이면 등줄기에 흐르던 땀방울이 싹 가시는 느낌이 든다.


영실을 거쳐 오르는 한라산 등산의 마지막 종착지는 윗세오름 대피소이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지고 온 도시락을 나눠 먹거나, 대피소에서 파는 컵라면을 받아 들고 휘휘 저으며 먹는 사람들 틈에는 까마귀가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고 있다.
처음에는 몇마리 안 보이다가도, 가끔 과자를 주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선가 수십마리의 까마귀가 몰려 든다.


이제 조금 있으면 제주섬 중산간 들녘은 억새의 하얀 꽃물결로 덮힐 것이다. 꽃을 피울 준비가 한창인 억새의 모습을 보며 오늘의 영실 등산을  마무리 한다.

제주도여행

제주도 이곳 저곳을 발길 닿는대로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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