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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천과 유배의 땅, 그 관문을 돌아 ...조천-함덕 해안도로

by 오르미 posted Jan 19, 2006



조선시대 중앙에 있는 양반들은 제주도를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이곳의 풍토와 인물은 아직 혼돈 상태가 깨쳐지지 않았으니, 그 우둔하고 무지함이 저 일본 북해도의 야만인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 글은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시절 그의 벗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 중의 일부이다.
고려 의종 7년(1153년), 제주에 처음 지방관을 파견한 이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중앙의 양반들에게 비친 제주인은 우둔하고 무지한 야만인이었다.
조천리 포구에는 제주도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있는 연북정(戀北亭)이 있다.
선조23년(1590)에 건립되어 그 이름을 쌍벽정(雙碧亭:그 자리가 바다 가운데 둥둥 뜬 형국이라, 주위에 바닷물이 차서 바다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다는 뜻)이라고 하였다가, 후에 증축하여 연북정(戀北亭)으로 고쳤다.
건물은 높은 축대 위에 동남향으로 하여 포구와 접하였으며, 북쪽으로는 타원형의 성곽을 쌓았고, 내부는 모두 개방되었고, 바닥은 마루로 되어 있다.
이것은 지방관으로 온 관리나 유배되어 온 사람들이 제주의 관문인 이곳에서 한양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면서 북녘의 임금에 대한 사모의 충정을 보낸다하여 붙인 이름이라 한다.

옛 제주읍성 안의 북쪽, 지금 북초등학교 앞 자리에 있었던 망경루(望京樓)는 조선 명종 11년(1556)에 창건한 후 제주도청 건축 때 헐린 누각이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멀리 제주까지 부임해 온 관리들이 서울의 흥취를 감상하기 위하여 붙여진 명칭일 가능성이 크다.
탐라순력도를 보면 주위의 건물보다 크고 높은 2층의 누각으로 되어 있어 멀리 서울하늘(?)을 쉬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과거의 중앙에서 내려 온 관리들에게 제주는 그저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땅이었다.
백성을 돌보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정자에 올라 북쪽 땅을 바라보며 임금이 불러 주기만을 목 빼어 기다리는 그런 땅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한번쯤은 오고 싶어 하는 관광지가 되었지만, 과거의 제주는 좌천과 유배의 땅,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조천포구는 조선시대 제주섬 북쪽에 있는 다섯개의 연육포구(連陸浦口) 중 하나였다.
'남사록'은 조천관포라고 하면서 조천방호소 소속 전선 1척과 함께 병선도 감출 수 있다고 하였다.
秦나라의 서복(徐福)이 불로초를 찾아 영주산을 찾아올 때 처음 이른 곳이 조천포라고 하며, 그가 떠날 때 이곳에서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보고 포구의 큰 바위에 조천석(朝天石)이라고 새겨 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육지로 나가려는 사람들이 풍향(風向)을 관측한다는 뜻과 아울러 하늘을 살핀다는 뜻으로 '조천'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조천포구의 입구에 '비석거리'가 있다. 제주도내의 역사가 오랜 마을에는 마을의 중심지나 일반이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비석거리라는 곳이 종종 있다.
그럼, 비석은 왜 세울까? 그 마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한 사람들의 업적을 대대손손 잊지 않기 위하여 세우는 것이다.
조천은 조선시대 중앙에서 파견되는 지방 관리들이 이곳을 거쳐 부임 또는 이임하였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치적과 석별의 정을 위하여 비석을 많이 세웠다.
이런 비는 흔히 '불망비(不忘碑)', '선정비(善政碑)' 등의 이름을 지니고 있다.
지방 수령을 칭송하는 이런 종류의 비는 한때 크게 유행되어 지탄받는 탐관까지 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특히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시대 말기에 더욱 성행하였다 한다.
17세기에 세워 진 1기를 포함하여 주로 19세기에 세워 진 7기의 비석이 남아 있고, 그것들은 제주도기념물(제3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들 비는 사상(使相,목사)과 통판(通判,판관)의 비석으로 이루어졌으나 비석 뒷면이 많이 마멸되어 건립연대 등을 알아볼 수 없다.


  조천리 일주도로에서 북쪽으로 가면 포구와 인접한 곳에 타원형으로된 조천성과 함께 연북정, 비석거리가 있고,
그 북쪽으로 대략 300m 정도를 더 가면 해안에서 약 50m정도 떨어진 높은 언덕에 연대가 있다.
조천연대는 조천진에 소속된 연대였다. 1976년 제주도기념물 제23-5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1975년에 복원되었으며, 주민들은 이곳을 '연디동산'이라 부른다.
연대에서 동쪽으로는 신흥리 해안, 서쪽으로는 원당봉 해안까지 바라다 볼 수 있다.
이 연대는 서쪽으로 별도연대(직선거리 6.7㎞), 동쪽으로 왜포연대(직선거리 1.8㎞)와 교신하였다.

  조천연대를 지나 해안도로로 신흥리 방향으로 길을 가다보면 길 가에 높게 쌓은 환해장성의 돌담들이 보인다.
제주도 섬 주위에는 적선(賊船)이 접안할 수 있는 곳이 많다. 그러므로 적을 막기 위하여 해안선의 접안할 수 있는 곳을 돌아가면서 성(城)을 쌓았으니 이를 환해장성(環海長性)이라 한다.
지금은 제주도기념물 제49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지만 갈수록 훼손되어 가고 있다.
돌, 바람,여자가 많아 삼다도로 불리는 제주에서, 돌은 제주사람들에게 척박한 자연을 안겨주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바람이 많은 자연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외세로부터 섬사람들을 보호해 주는 환해장성이나, 집을 경계 짓는 집담, 바람을 막아 주는 밭담, 방목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방목지를 경계 짓는 잣성, 우마로 부터 무덤을 보호해 주는 산담까지...
이런 돌담을 더 이상 훼손하지 말고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자연자원으로써, 널리 홍보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관광 활성화에 기여하면 어떨까?

  조천리를 지나 신흥리로 접어 들면, 해안가의 양어장에 겨울철새들의 한가로운 날개짓을 볼 수 있다.
특히, 흰색 몸과 초록색 광택이 나는 머리, 날개 부분이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부리와 다리는 붉은색인 '혹부리오리'는 겨울철 양어장이나 저수지에 수십 마리씩 무리 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겨울철새이다.
제주도의 이름 난 철새도래지는 아니지만 이 곳 신흥리 양어장에도 심심치 않게 여러 종류의 철새들을 조망할 수 있어 잠시 쉬어 갈만 한 곳이다.

  양어장을 지나면 양쪽으로 길게 뻗어 나간 코지 가운데의 모래밭 위에 여러 개의 방사탑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밀물이 들면 상체만 보이지만, 물이 빠지면 모래밭 가운데 3개의 방사탑이 뚜렿하게 나타난다.
이 곳 신흥리 해안에는 모두 5개의 방사탑이 있는데, 그 중 포구의 방파제 부근의 1기와 북서쪽 바닷가의 1기의 2기가 제주도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은 탑을 세운 방향이 虛(허)하고 邪(사)가 비추기 때문에 탑을 세워 煞(살)을 막는다고 한다.
남쪽 포구에 있는 탑은 '큰개탑' 또는 '생이탑'이라고 한다. 탑은 포구밖 암반 위에 세워졌는데 하단부에는 바닷물에 잠길 때가 많다.
탑의 상단부 안쪽은 50cm 정도 패여 있어 새가 자주 앉는다고 하여 '생이탑'이라 하며, 상단부가 오목하므로 陰塔(음탑)을 뜻하기도 한다.
북쪽 '새백개' 쪽에 위치한 탑을 '오다리탑'또는 '생이탑'이라고 한다. 이 탑은 역시 암반 위에 세워져 있고 탑 위에 똑바로 세워진 길쭉한 돌은 陽塔(양탑)을 뜻한다.

방사탑 반대쪽, 해안도로의 남쪽 길 옆에는 당이 하나 있다. 볼래낭(보리수나무)으로 덮혀 있는 이 당을 '볼래낭 할망당'이라고 부른다.
볼래낭이 신목(神木)인 이 당은 볼래낭 할망과 토지지관 대방황수 두 신위를 모시고 있다. 물색을 걸지 못하게 해서 굿이 끝나면 다 태워버리고, 남자 심방은 빌지 않는 금남의 당이라고 한다.

조천-함덕해안도로의 끝은 함덕해수욕장이다.
겨울의 해수욕장은 을씨년스러움 그 자체이지만, 서우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래사장에는 간혹 연인들의 발자욱이 길게 이어진다.

해안도로를 따라 조천에서 함덕을 돌아 보는 동안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다.
그 옛날 낙후된 문화와 중앙의 실력자와의 단절, 배를 타고 죽음을 감수하며 건너야 했던 두려움 등으로
좌천의 땅..유배의 땅이라 불렸던 제주의 오늘을,
중앙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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