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의 마지막 일요일
이제는 완연한 봄이다.
주변에는 이미 개나리와 목련이 만개하고,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봄꽃들이 예년보다 일찍 개화하리라는 예보와는 달리
궂은 날씨 때문인지 예년과 비슷하게 꽃들이 개화를 시작했다.
화창한 일요일에 오름을 오르는 것보다 기분이 상쾌한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은 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풀밭 오름들을 가기로 했다.
비교적 접근이 수월한 비치미와 큰돌이미 그리고 개오름으로 정하고 길을 나선다.
다른 오름회도 그렇겠지만 봄이 오니 참가하는 회원들이 부쩍 늘었다.
겨우내 움추렸던 사람들이 활동을 시작하는 계절이 온 것이다.
오름도 겨울의 삭막함을 떨쳐버리고, 기지개를 켜며 우리를 맞이하리라 생각하니 발걸음이 가볍다.
비치미와 큰돌이미 그리고 개오름은 서로 이웃해 있다.
비치미와 큰돌이미는 구좌읍 송당리, 남동쪽에 위치한 개오름은 표선면 성읍리에 속한다.
그 사이가 남군과 북군의 경계인 것이다.
그 경계에 차를 세우고 비치미를 향해 북동사면으로 접어들었다.
철조망을 넘고 키작은 소나무 숲을 지나니 오름의 능선에 접어든다.
북동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굼부리를 가운데로 두고 오름의 능선을 왼쪽으로 오른다.
무심코 내려다본 능선 풀밭에는 지천에 피어 있는 산자고 밭이다.
백합과의 흰색의 꽃을 피우는 산자고는 까치무릇(물구)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꽃이다.
불어오는 바람을 이기려, 키를 한껏 낮춰 피어 있는 하얀 꽃들은
우리들의 산행을 조심스럽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는 벌써 꽃을 피운 봄꽃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산자고를 비롯하여 제비꽃, 솜나물, 민들레, 가는잎할미꽃, 양지꽃, 미나리아재비.
겨우내 움추렸던 날개를 하나 둘 펴고 있는 것이다.
불어오는 바람을 피해 잠깐 휴식을 취하고 길을 재촉한다.
큰돌이미는 비치미와 자락을 맞대어 이어져 있는 오름이다.
완만한 등성이로 이루어진 대형의 원형 분화구였으나
이차적인 용암유출에 의해 화구가 동북방향으로 터진 형태를 하고 있다.
오름 정상에 돌무더기가 있어 '돌리미' 곧 '돌의 뫼', '돌산'의 뜻으로 붙여진 이름일 수 있다고 한다.
돌산을 오르는데 바위 틈에 제비꽃이 한무더기 피어있다.
길은 외줄기,
뒤에 오는 사람이 오르려면 길을 비켜 주어야 하지만 개이치 않고 카메라를 들이댄다.
다른 사람들과 오름을 오르다, 사진을 찍느라 지체한 경우가 어디 한두번이던가.
봄날씨 답지 않게 땀이 송송 날 정도로 덥고, 흙먼지가 날릴 정도로 바람이 드세다.
개오름을 향하여 입구에 들어서는데 갑자기 확성기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인가 고개를 들어보니 삼사십명은 될 것 같은 사람들이 개오름을 오르고 있다.
뒤 돌아 본 비치미의 능선에도 큰돌이미를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오름의 계절이 온 것이다.
서사면의 작은 골 옆 측백나무 조림 사이로 훤히 나 있는 길을 따라 정상을 향한다.
정상 아래 다소 우묵한 갈대밭에 도착하니 정상은 먼저 올라온 사람들의 차지가 되어 있었다.
내려 오기를 기다리며 가쁜 숨을 몰아 쉰다.
오름을 오르면 주위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곳의 세 오름을 오르며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오름들을 두루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직은 오름의 색이 초록은 아니지만 주위에 간간이 보이는 노란 유채밭과
긴 겨울을 이겨내고 자라고 있는 보리밭, 그리고 목장의 푸른 초원
봄이 되면 온 들판을 수 놓았던 노란 유채밭들은 농산물 개방과 함께 사라졌지만
그래도 제주의 봄 풍경은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있었다
봄내음에 취한 일행들은 점심을 먹은 후에도 돌아갈 생각을 안하고 있다.
그래!
화창한 봄날, 봄꽃에 취하고 오름에 취하는 것도 좋으리라
돌아가는 길에 서우봉을 들렀다.
작년 이맘쯤의 서우봉은 유채가 만발 하였는데
지금은 밭뚝에서만 우리를 반긴다.
(2003년 3월 30일)